서론: 단순 설계에서 자동화 설계로, CAD 디자이너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CAD(Computer-Aided Design)는 오랫동안 설계 산업의 핵심 도구로 활용되어 왔다. 기계, 건축, 인테리어, 전기, 토목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CAD 디자이너는 도면을 시각화하고 기술 사양을 구현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AI 기반 설계 자동화 기술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CAD 디자이너의 입지는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AI는 치수 계산, 구조 최적화, 부재 간 간섭 체크 등 반복적인 작업을 스스로 학습하고 수행할 수 있게 되었고, 이에 따라 단순 도면 작업을 전문으로 해오던 수많은 CAD 인력의 일감은 감소하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과 프리랜서 CAD 디자이너에게 이 위기는 더욱 가깝고도 현실적이다. 이 글은 AI 기술의 도입으로 인해 발생한 CAD 시장의 변화와 디자이너들이 맞닥뜨린 위기의 실체를 살펴보고, 앞으로 CAD 디자이너가 나아갈 방향을 탐색한다.
CAD 자동화, 반복 작업을 지우다
AI는 CAD 소프트웨어에 ‘기능’이 아닌 ‘판단’의 능력을 부여하고 있다. 예전에는 도면 설계를 위해 사용자가 직접 치수를 입력하고 객체를 배치했지만, 현재는 AI가 구조 규칙을 학습한 후 스스로 레이아웃을 제안하고, 실시간으로 수정을 반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계 부품 도면을 설계할 때 AI는 부품 간의 간섭 가능성을 실시간으로 예측하고, 최적의 배치 구조를 자동 제안할 수 있다.
이처럼 반복적이고 규칙 기반인 작업일수록 자동화의 속도가 빠르다. 특히 기성 제품의 표준 설계나 대량생산 부품 설계 등은 AI에게 가장 먼저 넘어간 영역이다. 문제는 이러한 작업들이 프리랜서 CAD 디자이너나 중소 설계 업체의 주요 수익원이었고, 실무 현장의 상당수 일감이 이 범주에 포함된다는 점이다. AI 도입은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일감의 재분배를 의미하는 셈이다.
현장 CAD 디자이너들의 생계 위협, 이미 시작된 구조 변화
중소 제조업체와 건설업계에서는 이미 CAD 자동화 도구의 도입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기존에는 외주 디자이너에게 맡기던 평면도, 기초 배관 설계, 기계 구조 설계를 AI 플러그인과 연계된 CAD 시스템으로 대체하는 사례가 증가했다. 예를 들어, AutoCAD, SolidWorks, Revit 등의 대표적인 CAD 플랫폼에는 AI 기반 설계 보조 기능이 탑재되었고, 설계 시간을 평균 40~60%까지 단축시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현장에서는 CAD 인력의 축소가 가시화되고 있다. 과거 2-30명으로 구성되던 사내 CAD팀이 10명 내외 체제로 줄어들고, 프로젝트 단위로 참여하던 프리랜서 디자이너들은 계약 갱신이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5년 미만의 경력을 가진 CAD 디자이너들은 자동화 기술보다 더 빠른 업무 속도나 정확도를 보여주기 어렵기 때문에 채용 시장에서 도태되는 현상도 뚜렷하다.
한 프리랜서 디자이너는 “기존 고객사에서 AI 기반 설계 툴을 도입한 이후, 월 5건 이상 받던 외주가 현재는 1~2건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현실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일감의 감소는 수익의 감소로 직결되며, CAD 디자이너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모션그래픽과의 차이점: CAD는 기술 중심, 감성 배제가 가능하다
모션그래픽 디자이너와 CAD 디자이너의 차이는 바로 ‘감성 개입’ 여부에 있다. 모션그래픽 분야는 감각적인 연출과 아트워크 요소가 결합되기 때문에 AI가 완벽히 대체하기 어려운 창의적 작업이 많다. 반면, CAD 작업은 기술적이고 구조적인 특성이 강하기 때문에 수치, 논리, 패턴을 기반으로 하는 AI의 성능이 더 빠르게 인간을 대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모션그래픽 분야에서는 한 프레임에 감정이나 브랜드 메시지를 담아야 하지만, CAD 분야에서는 공학적 규칙과 법규, 물리적 연산 결과에 기반한 정답이 존재한다. 이처럼 감정이 개입되지 않는 정량 작업은 AI의 강점이 가장 극대화되는 영역이기 때문에, CAD 디자이너는 상대적으로 더 빠르게 소외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CAD 디자이너는 예술적 감각을 앞세우기보다, 기술적 분석과 AI 활용 능력, 시뮬레이션 기반 설계 능력 등을 갖추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 단순히 기존 기술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AI보다 높은 차원의 공학적 판단과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고급 인력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CAD 디자이너가 살아남는 전략: ‘도구 사용자’가 아닌 ‘설계 사고자’로 전환하라
AI에 밀리지 않기 위해 CAD 디자이너가 선택할 수 있는 생존 전략은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나뉜다.
첫째, 설계 사고(Design Thinking)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단순히 도면을 그리는 작업자가 아닌, 공간의 쓰임과 사용자의 요구를 분석하고 설계 전략을 제안하는 ‘설계 사고자’로 포지션을 바꿔야 한다. AI는 도면을 빠르게 완성하지만, 그 도면이 실제 환경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해석하는 능력은 아직 인간의 몫이다.
둘째,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 및 시뮬레이션 기술 습득이 필요하다.
BIM은 단순한 2D/3D 도면을 넘어서 자재 정보, 구조 분석, 공정 계획 등까지 통합하는 고도화된 설계 기법이다. CAD 디자이너가 BIM으로의 확장을 시도하면 고급 엔지니어링 역량을 보유한 설계자로서 살아남을 수 있다. 또한 CFD, FEA 등 시뮬레이션 기술은 AI의 자동화 대상이 아니므로, 고급 역량 확보가 가능하다.
셋째, AI 기반 설계 도구를 직접 활용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AI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능동적으로 다루는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 파라메트릭 설계나 제너레이티브 디자인 등 최신 설계 방식은 AI와 인간이 협업하는 형태다. 이를 빠르게 익힌 디자이너는 오히려 AI 시대에 더 많은 일감을 얻을 수 있다.
단순 작업자에서 설계 전략가로, CAD 디자이너의 진화는 필수다
AI는 CAD 산업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단순한 도면 작성은 이제 더 이상 경쟁력이 아니다. 앞으로 살아남는 CAD 디자이너는 ‘도면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설계를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다. 기술의 위협을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디자이너는 여전히 산업 현장에서 필요로 한다. 지금이야말로 자신의 역할을 재정의하고, AI와의 차별화를 꾀해야 할 시점이다. AI에 의해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AI 위에 올라서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CAD 디자이너의 미래는 여전히 유효하다.
'AI 시대 직업군' 카테고리의 다른 글
AI 도입 이후 세무사의 업무 변화와 소외 현상: 자동화의 명암 (0) | 2025.07.22 |
---|---|
AI 시대 인쇄소 운영자들의 생존법: 수요 변화 분석과 전략 (0) | 2025.07.21 |
AI로 사라지는 법률 보조인: 파라리걸의 위기와 대안은 있는가? (0) | 2025.07.20 |
AI 작곡 기술로 위축되는 라이브 밴드 시장: 사라지는 감성과 살아남는 전략 (0) | 2025.07.20 |
AI로 인한 소외직군을 위한 기본소득 논의의 필요성과 현실성 (0) | 2025.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