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일’로 여겨졌던 경리 업무, 이젠 기계가 대신하는 시대
경리는 단순히 숫자를 정리하는 직무가 아니다. 기업의 지출을 정리하고, 정확한 영수증을 분류하며, 세무 처리의 기초가 되는 데이터를 책임지는 조용하지만 핵심적인 관리직이다. 특히 중소기업에서는 회계사의 조언 없이도 경리직이 전표를 정리하고, 경비 처리 기준을 잡으며 실질적인 재무 흐름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AI 기반의 영수증 자동 처리 시스템이 급속히 도입되면서 경리직의 주요 역할이 점차 축소되고 있다. 스마트폰 앱 하나로 영수증을 촬영하면 자동으로 항목이 분류되고, 경비/비용으로 인식된 후 장부에 반영되며, 필요시 세무신고까지 연계되는 시대. 이 변화는 경리직이 ‘보조’가 아닌 ‘중심’으로 활동하던 구조를 빠르게 해체하고 있다. 이 글은 AI 기술의 도입이 경리직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주고 있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고용 시장과 업무 문화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AI 영수증 처리 시스템의 발전: 버튼 하나로 끝나는 전표 입력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경리직은 직원들이 제출한 종이 영수증을 모아 일일이 확인하고, 항목을 구분해 엑셀이나 전산 시스템에 입력한 후, 적절한 회계 계정으로 분류하는 역할을 맡았다. 전표 입력과 부가세 구분, 분기별 정산 준비까지 포함하면 경리직의 하루는 단순 반복 속에서도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업무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다음과 같은 기능을 갖춘 AI 기반 시스템이 일반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 OCR 인식으로 영수증 이미지 자동 텍스트 추출
- 구매 항목, 날짜, 금액 자동 인식 및 분류
- 비용 항목(교통비, 식대, 접대비 등) 자동 추천 및 전표 생성
- 부가세 여부 자동 구분 및 공제 대상 자동 처리
- 세무 프로그램 연동을 통한 자동 기장 및 리포트 생성
특히 인공지능이 거래 패턴을 학습하여 유사한 영수증을 자동으로 분류하고, 불일치 또는 의심 거래는 알림을 통해 관리자에게 전송해 검토를 요청하는 기능까지 포함되면서, 기존 경리직이 매일 수행하던 반복 업무의 상당 부분이 AI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
경리직의 현실: 단순화된 역할과 소외된 전문성
AI 도입으로 효율성은 높아졌지만, 그 반대급부로 경리직 종사자들은 업무에서 밀려나는 위기를 체감하고 있다. 특히 다음과 같은 현상이 눈에 띄게 나타난다:
- 전표 입력 인력 축소 및 계약 종료 증가
- 신입 경리직 채용 중단 혹은 인턴제도로 대체
- 업무 범위가 ‘관리’에서 ‘모니터링’ 수준으로 축소
- 경영자-세무사 간 직접 연계 강화로 경리직 패싱 현상 심화
중소기업의 경우, 과거에는 대표나 실무자가 모든 회계 지식이 없더라도 경리직을 통해 상황을 파악했다. 하지만 AI 회계 툴을 이용하면 실시간으로 거래 현황과 비용 내역을 시각화된 대시보드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경리직의 설명조차 필요 없는 구조로 전환되고 있다.
그 결과, 경리직의 전문성은 평가받지 못한 채 ‘단순한 보조 역할’로 축소되고 있으며, 일부 기업에서는 경리직 전체를 아웃소싱하거나 외부 세무대리인과만 연결하는 구조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자동화의 결과가 아니라, 업무 구조 자체의 해체를 의미한다.
경리직이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없어졌는가? 아직 기계가 넘지 못한 경계
AI 기술은 숫자를 잘 다룬다. 그러나 경리 업무에는 단순 숫자 입력 외에도 문맥을 읽고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 직관적 판단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이 영역은 아직까지 기계가 침범하지 못한 부분이다.
- 비정형 지출에 대한 해석: 출장비와 접대비가 혼재된 영수증, 일자와 실제 소비시점이 다른 정산 등은 단순 알고리즘으로는 처리할 수 없다.
- 내부 규정에 맞춘 비용 분류: 회사마다 다른 비용 처리 규정(예: 식대 기준, 주말 근무 교통비 인정 여부 등)은 사람이 직접 조율해야 한다.
- 세무 리스크 예측과 선제 조정: 경리직은 반복 업무를 통해 패턴을 파악하고, 이례적인 지출이나 반복 누락 항목을 감지하여 리스크를 방지해왔다.
- 보고용 커뮤니케이션 문서 작성: 임원에게 제출하는 보고서, 회계 담당자와 소통하는 문장 구성 등은 아직 사람이 해야 한다.
이처럼, 단순 영수증 입력은 AI가 할 수 있어도, 그 뒤에 숨겨진 맥락과 기준, 상황을 해석하고 조율하는 능력은 경리직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의 경쟁력이다.
AI 시대의 경리직 생존 전략: 데이터 관리자로의 전환
AI가 경리 업무를 침범하는 시대에 경리직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단순 입력자에서 데이터 분석과 조율을 담당하는 관리자로 진화할 필요가 있다. 다음과 같은 방향이 효과적이다:
① ‘재무 커뮤니케이터’로의 역할 전환
AI가 수치를 산출해도, 이를 대표와 부서장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는 사람은 여전히 필요하다. 경리직은 숫자와 사람을 잇는 ‘전문 설명자’가 될 수 있다.
② 내부 규정 설계자 및 문서 관리자
단순 입력 대신, 정산 규정, 지출 승인 체계, 비용 기준 정립 등 내부 문서 체계 정비를 주도하면 경리직의 전략적 역할은 강화된다.
③ AI 툴 관리자 또는 커스터마이저로 이동
AI 회계 시스템을 단순히 사용하는 것을 넘어서, 사용자 정의 항목을 설정하고 오류를 보정하며, 회계사/세무사와 조율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 생존의 핵심이다.
④ 세무 서포터 또는 ERP 연계 담당자로 확장
세무사무소와의 연계, 연말정산/부가세 등 신고서류 정리, ERP 시스템 연동 등 자동화로 커버되지 않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책임지는 포지션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숫자를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숫자 뒤에 있는 흐름을 읽는 사람이 필요하다
AI 영수증 처리 기술은 경리 업무의 많은 부분을 자동화했다. 하지만 그 자동화는 단지 단순 반복의 제거이지, 전체 업무의 소멸은 아니다. 경리직은 여전히 사람과 숫자, 제도와 현실 사이를 연결하는 중요한 관리자다.
지금이야말로 경리직이 자신의 가치를 재정의할 시점이다. 수많은 데이터를 누르고, 통제하고, 정리하는 AI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누락된 거래를 알아채고, 규정 밖의 예외를 감지하며, 불편한 흐름을 바로잡는 감각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
경리직은 더 이상 ‘입력하는 손’이 아니라, ‘관리하는 눈’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리고 그 눈이야말로, AI가 따라잡을 수 없는 진짜 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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